밴쿠버에 온 지 6일차. 이상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고 몸이 무거웠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게 퇴사 3일 만에 밴쿠버에 날아와서 매일 15,000보를 걸었고 퇴사 전 3개월 동안 거의 매일 약속이 있었다. 그 와중에 새로운 취미인 클라이밍에 빠지고, 온갖 서류를 정리하며 정신 없이 보냈다.
힘이 있는 게 더 이상하다. 몸도 마음도 아무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밴쿠버 집은 눈 뜨면 창밖으로 나무가 보인다.
동생이 출근하며 커튼을 열어 두면, 침대서 꼬물꼬물 거리며 나무를 보며 일어나는 사치를 부린다. 알람 없이 아침에 눈을 뜨고 가장 먼저 창밖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는 이 사소한 일이 아침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느긋하게 일어나 차 한 잔을 마시고, 그릭 요거트 볼을 만들어 먹는다. 집에만 있기엔 시간이 아까워 길을 나선다. 오늘은 걷기도 싫고 뭘 하기도 싫으니 나가서 커피만 마시고 오자! 밴쿠버에 한 달을 살 수 있는 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니 내일의 내가 아쉬워할 것 같아 일단은 집을 나서본다.
가는 길에 친구가 추천해 준 소설을 읽는다. 단편 중 첫 글이 좀 어렵게 다가왔다. 문장 속에 의미가 많아서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다. 읽다가 지금의 나와는 맞지 않아 덮었다.
The Paper Hound Bookshop
344 W Pender St, Vancouver, BC V6B 1T1 캐나다
카페에 가려고 내린 버스 정류장 건너편에 있던 책방. 갈까 말까 망설이다 '지금 아니면 못 갈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갔다. 언젠가부터 삶에서 두 번의 기회는 잘 없다. 특히 여행지에선 더 그렇다. 뭔가를 해야겠다 생각이 들 때 움직여야만 닿을 수 있다.
이곳은 중고 서적 (혹은 빈티지)와 신간을 함께 판매하는 작은 서점이다. 도서 종류는 적지만 구성은 알차게 채워져 있다.
책장으로 작은 공간을 삐뚤빼뚤하게 나눈 책방을 만날 때면 그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책 구경을 하고 싶다.
MacLeod's Books
455 W Pender St, Vancouver, BC V6B 2Z3 캐나다
서점 바닥까지 중고 서적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책 산이 많아 움직일 때마다 조심해야 한다. 중간중간 재밌는 책도 많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만 모아둔 책도 있고 툴 박스 책도 있고. 구제 시장처럼 책 보물찾기 가능한 곳이다. 3권 사면 할인도 하고 있다.
LP 디깅하듯이 이곳에선 한참 시간을 보내며 재밌는 중고 책을 찾았다. 책 표지도 사양도 내부 디자인도 모두 다른 책들을 보면서 때로는 책이 사람 같단 생각도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나름의 재미가 있다.
책과 서점을 좋아한다면 같은 날 서점 투어 하기 딱 좋은 위치에 있다.
인스타그램으로 책을 미리 구경할 수 있다.
https://www.instagram.com/macleodsbooks/
밴쿠버 시내 어디서든 보이는 주차장. 여기 와서 PARK을 가장 많이 말한 것 같다.
허쉘의 도시 캐나다. 한국에선 입점된 허쉘만 볼 수 있는데 여긴 허쉘 매장이 많다.
vinyl records
44 Water St, Vancouver, BC V6B 1A4 캐나다
밴쿠버 온 첫날, 방문하고 싶었는데 가지 못했던 레코드 가게.
서점을 들렸다 카페를 가기 전에 슥 들렸다. 오후 6시로 일찍 문을 닫으니 방문 계획이 있으면 서둘러 방문해야 한다. 집에서 나올 땐 아무것도 하기 싫었는데 막상 서점 두 군데 구경하고 레코드숍에 가니 또 내 속의 호기심이 살아나서 막 힘이 났다.
한국에서도 밴쿠버에서도 찾고 싶은 음반이 있었는데, 이날 이후에도 종종 거리며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분위기나 접근성이 무척 좋았던 가게다.
이쯤 되면 단골인가.. Deville coffee Waterfront
745 Thurlow St, Vancouver, BC V6E 1V8 캐나다
책방 두 곳과 레코드 가게 구경하고 데빌 커피 창가 자리에 와서 유튜브 편집했다.
퇴사 후 유튜브 열심히 찍으려고 영상 많이 찍고 있는데 현재 노트북이 없어서 편집이 쉽지 않다.( 회사 노트북은 반납했고, 개인 노트북은 타이밍 좋게 오기 전에 고장 남..) 동생의 2017년 맥북을 빌려 겨우겨우 영상 편집 하나 했다. 퇴직금이 빨리 들어와야 노트북을 살 수 있는데, 서류상 퇴사 일정으론 퇴직금이 10월 말에 들어올 예정.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지
일주일 동안 햇빛 듬뿍 받으면서 공원만 다녔지만, 사실 사람이 좀 넋이 나갔었다. 경주마처럼 달렸던 체력이 밴쿠버 첫 주에 와르르 무너진 느낌이랄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집을 나서서 길을 걷고, 좋아하는 가게에 들러 새로운 것을 구경하고, 햇빛을 듬뿍 맞으며 음악을 들으니, 빈 것 같았던 기분도 차곡차곡 채워지더라. 역시 할까 말까 할 때는 손을 내밀고 잡아보는 게 좋은 것 같아. 어떤 선택을 해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다가서 말을 걸어 보고 함께 웃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언젠가부터 삶에서 두 번의 기회는 잘 없다는 걸 깨닫고 있는 요즘이라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잘 쉬었고, 잘 쉬었기에 또 잘 나아갈 수 있겠지. 내일도 소소하게 즐거웠으면 좋겠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면 좋겠다.
오늘의 움직임
* 걸음: 15,187
밴쿠버에서 한 달 살기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 달을 살게 되었다. 삶에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밴쿠버에서 한 달 동안 먹고 걷고 즐긴 하루들을 기록한다. 빅잼은 없어서 피식잼은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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