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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O | 좋아하면 잃지 않도록 마음과 시간을 써야 해 | 수영(2022)

our warm camp/SIDO

by Chungmin 2024. 8. 2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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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차

수영이 하고 싶었다. 딱히 큰 이유는 없었다. 할 줄 아는 운동이고 옆 동네에 큰 수영장이 있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랄까. 사실 그것도 다 곁가지다. 퇴근 후 뭐라고 하고 싶었다. 수영 강습 자리가 나지 않아 몇 달을 기다렸다가, 이러다 내년까지 수영장도 못 가겠다 싶어 자유수영 월권 대기를 걸어뒀다. 몇 달 만에 티켓팅 성공. 수영장은 언제나 동네에 부족해서 사람이 몰리니 강습은 로또처럼 느껴진다.

아무튼 수영 1일 차. 오랜만에 몸에 착 붙는 수영복을 입고 밖을 나서려니 망설여졌다. 맨몸도 아닌데 맨몸으로 나가는 것 같아 문 앞에서 자꾸 망설여져서, 결국 수경을 쓰고서야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용기를 내 한 발자국, 사실 나서기만 하면 별거 없는데..

 

자유형과 배영은 어려서 배워 알기에 자신 있게 물에 뛰어들었으나 꼴랑 수영 반 바퀴에 숨이 미친 듯이 찼다. 8시에 시작했는데 정확히 2분 만에 포기하고 싶었다. 고작 반 바퀴를 돌고는 '어우 힘들어' 소리를 입 밖으로 계속 냈다. 수영이 원래 이렇게 힘든 운동이었나. 그래도 오랜만에 물에 들어오니 즐겁다. 물속에서의 움직임은 둔해지는데 몸은 말랑말랑 해지는 것 같아서.

수영장 안에선 1분이 10분 같이 느껴지지만, 반 바퀴 달리는 데는 겨우 1분. 처음 두 바퀴는 킥판에 매달려 발차기만 했고, 그다음 두 바퀴는 킥판을 잡고 손까지 뻗어 자유형을 했다. 그리고 나서야 몸이 감각을 어렴풋이 찾았는지 맨몸으로 자유형이 되었다. 첫날이니까 무리하지 말자, 몇 년을 안 했는데 잘할 수가 없지. 이번 달은 엉성하게 죽을 것 같이 반 바퀴도 힘들지만, 다음 달엔 쉬지 않고 한 바퀴를 달릴 수 있겠지 뭐. 대충 하자 마인드로 조급한 마음을 다독이며 자유수영 라인에서 빠져나와 걷기 라인으로 넘어갔다.

딱 30분만 하고 나왔다. 50분도 못 채웠는데 온몸이 노곤노곤. 오는 길에 편의점을 갔는데 문을 열자마자 알록달록한 젤리들이 나를 꼬신다. 홀리듯이 8,000원 치 젤리를 사서는 집으로 걸어오며 한 봉지를 탈탈 먹었다.

 

 

2일 차

퇴근 후 수영장에 갔다. 오랜만에 물에 들어가 첨벙첨벙하니 재밌었나 보다. 길을 걷고 밥을 먹다가도 문득 '수영 가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 얼른 물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물속에 폭 들어가 있으면 압력 때문에 심장이 답답한데 그것조차 빨리 느끼고 싶을 만큼.

6시 땡! 퇴근하고 길을 나선다. 유리창 너머로 수영장이 보인다. 호다닥 들어가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고 준비운동도 하고 정각에 딱 맞춰 들어갔다. 은은하게 풍기는 락스향이 더해진 수영장 냄새. 늦은 시간인데도 들떠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여전히 수영복을 입고 탈의실을 나가는 건 맨몸 같아 부끄럽지만 그래도 한 번 했다고 처음보다는 망설이는 시간이 줄었다.

자유수영 '초급' 라인 앞에 자리를 잡는다. 오늘은 초록색 킥 판을 들고 왔다. 시계를 보니 25m를 헤엄치는 데 1분이 채 안 걸린다. 아마 40-50초 사이일 것 같다. 킥 판을 잡고 발차기로만 25m를 두어 번 간 뒤에, 맨손 자유형으로 헤엄친다. 숨이 터질 것 같지만 터지지 않을 걸 알고 있으니 발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에 힘이 들어간다. 정확히는 허리와 허벅지에 힘이 잔뜩 붙는다. 숨이 가쁘다 보니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이다. 물속에 고개를 넣으면서도 몸에 최대한 힘을 빼는 것에 집중한다. 여유가 없으니 호흡이 가빠지는 와중에도 수영장 바닥을 유심히 본다. 물속에 고개를 넣을 때,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이 물을 투과하여 수영장 바닥에 비친다. 마치 빛 조각이 두둥실 떠다니는 것 마냥 아름답다. 고개를 물속에 넣어 전진하는 사람만이 수영장 바닥에 잠긴 빛의 춤을 볼 수 있다. 그게 아름다워 잠수를 한참 한다.

오늘 수영을 하며 깨달았는데 머리에 팔을 바짝 붙여 팔을 돌리니 속도가 더 빨랐다. 확실히 첫날보다 여러모로 나았다. 예전에 수영을 배웠던 감이 하나씩 떠오른다고 할까. 솔직히는 수영 수업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엄마한테 수영 자세 틀어진다고 잔소리 들은 건 기억이 난다. 엄마랑 찬이랑 나랑 명동 YMCA에 가서 수영을 하고 나와선 매번 붕어빵 먹었는데.

수영 가방을 따로 살까 하다가 10월에 소비를 많이 한 탓에 주머니가 가벼워 집에 있는 것으로 대충 해결한다. 스타벅스 비치백에 활용도 높은 키티버니포니 메시 파우치에 샤워 용품을 넣고, 올해 회사에서 제작한 리사이클 파우치에 스킨케어 제품과 양말 등을 넣는다. 비치백이라 수영복은 대충 넣어 다닌다. 젖지 않아 좋고 말릴 필요 없이 툭툭 털면 되어 좋다.

취미가 되기 전까지는 뭐든 대충대충 다니고, 정말 오래 할 것 같은 것에만 돈을 쓴다. 누구보다 장비를 먼저 갖추는 사람이지만 싼 것을 사고 해 보고 아니면 마는 자.(내가 데카트론을 사랑하는 이유다.) 2회차라고 호흡이 처음보다 안정적으로 잡혀 괜히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40분을 했다. 어제보다 10분이 늘었다. 휘파람을 불며 버스 정류소로 가는 길에 수영 10회까지는 해보자는 마음이 든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야지. 그럼 어떻게든 그다음 스텝이 만들어질거라는 걸 안다.

 

 

3일 차

운동할 때 밥을 먹는 타이밍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운동 전에 먹으면 소화되는 두어 시간이 필요하고, 운동 후엔 에너지 소비 후라 허겁지겁 과식을 하게 되고. 우선 오늘은 운동 2시간 전에 밥을 먹었는데... 실수였다. 밥을 먹으니 몸이 무거워 잘 뜨지 못했다. 속도 불편하고 허리가 자꾸 가라앉는 느낌? 다음엔 차라리 수영 후 식사가 낫겠구나 하는 데이터가 쌓인다. 일부러 조금만 먹었는데도 속이 부대낀다. 으-

오늘은 배영을 시도했다. 예전부터 자유형과 배영은 늘 잘했는데 오랜만에 하니 감각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발 물장구를 이렇게 찼던 것 같은데 자꾸만 물을 먹는다. 언제나 잘한다고 생각했던 감각을 잃었다는 기분에 허탈했으나, 금방 킥판을 안고서 발차기 연습을 시작했다. 안되면 다시 해보면 되는 거지 뭐!

 

좋아했던 걸 계속 지속하지 않으면 그 기능 자체를 잃게 된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구 도형에 명암을 넣어 스케치하는 걸 좋아했는데(그림을 잘 그리진 못하지만 구 명함 표현만큼은 잘했는데) 얼마 전 그려보니 연필 선이 뭉개지며 명암이 엉망이었다. 바닥 반사빛 위치가 여기인가, 헷갈려 하며.

 

배영도 똑같았다. 기억 속에서 나는 언제나 배영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구 도형의 명암을 잘 그리고, dslr 밸런스도 잘 맞추는 사람. 그래서 잠시 그만두어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모양이다. 수영장 물을 왕창 먹어가며 몸은 기억만큼 움직이지 못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좋아하는 마음은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수리하고 꾸준히 만져야만 지킬 수 있다는 걸 수영을 하며 다시금 배워가고 있다. 삶의 모든 감각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면 잃지 않도록 마음과 시간을 써야 한다.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걸 오래오래 좋아하고 싶다면.

 

 

그 이후 -

날이 점점 추워지며 수영장에 가는 날이 줄었다. 원래 하고 있던 운동인 클라이밍에 더 집중한 탓도 있다. 2023 겨울에도 조금 다녔으나 두어 번에 그쳤다. 위의 기록은 2022년 겨울에 작성해 둔 작심삼일 수영기록. 그리고 오늘 다시 수영에 다녀왔다.(2024년 8월) 이전에 몇 번 수영장에 가봤다고 오늘 망설임 없이 길을 나서는 내 모습이 좀 좋았다. 꾸준히 지속하지 않아도 되니 하고 싶을 때 일단 길을 나서보자. 뭐든 해봐야 후회든 성장이든 할 테니까-

 

 

 

 


시도일기 | 망설일 시간에 일단, 그냥!

어느 여름 오랜 친구와 패들보트를 타러 갔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강에서 몇 번이고 물에 빠지고도 깔깔 웃으며 계속해서 나아가는 나를 보며 친구가 말했다. '너는 물에 빠질수록 재미를 느끼는 사람 같아!'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은 탓에 언제나 몸이 먼저 뛰어드는 편이었으나 어른이 되어가며 두려운 게 많아졌는지 모든 시작 앞에 고민이 길어졌다. 시도일기는 원래의 나를 찾고 싶어 시작한 기록이다. 꾸준하지 않아도 좋다. 망설일 시간에 일단 길을 나서보자. 나서야 실패든 성공이든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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