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캠핑을 떠났다. 작년 겨울에 동해 바다로 자전거 캠핑을 다녀온 게 마지막이었으니 시간이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흘러버린다. 적어도 계절에 두 번은 떠나자고 그렇게 삶과 휴식의 균형을 맞추자며 지난날 스스로와 했던 약속이 삶의 바쁨 앞에선 맥을 못 추린다.
나이를 먹어가며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회사에서 맡고 있는 일이 시간의 가속에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격주마다 발행되는 자기 계발 뉴스레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기획부터 제작, 마케팅까지 구석구석 내 손이 닿는 곳이 넓어지고 있다. 이 말은 내 삶이 2주라는 큰 덩어리로 돌아간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러니까 뉴스레터 패턴을 두 번 돌고 나면 한 달이 홀랑 지나가있다는 소리. 눈 깜짝할 새다.
그래도 구독자가 매주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어 보람이 쏠쏠한데, 책임감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자책도 매주 같이 성장 중이다. 부족함과 실수는 왜 언제나 레터를 발행한 다음에나 보이는 걸까. 하지만 언제나 감정을 다 털어내지 못하고 다시 뉴스레터 루틴을 시작한다. 혼자 맡은 프로젝트엔 망설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노트북이 코를 콕 박고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기사를 읽으며 좋은 글을 찾는다. 그러다 보면 유독 눈도 마음도 가는 글쓴이를 만나게 된다. 요즘 가장 빠져있는 분은 조곤조곤 내 마음의 문제를 정갈한 문장과 단어로 짚어주는 글을 쓰는 분인데 얼마 전 읽은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존경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에 대해 쉽게 실망하는 버릇 또한 어떤 면에서는 자의식 과잉이라는 얘기였다. (...)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실수나 실패에 대해서도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마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나는 이것보다 더 나은 존재여야 한다’는 믿음이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런가? 싶었던 이야기에 어느덧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왜 습관적으로 내게 항상 많은 것을 기대하는 걸까?'
- 출처: 동아 사이언스
이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아!’ 탄성을 질렀다. 살다 보면 내 마음이 왜 그런지 모르겠는 때가 있다. 분명 균열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이유를 모를 때. 그럴 때 알맞은 단어를 만나면 숨이 쉬어질 때가 있다. 누군가 짚어주는 문장이나 단어를 붙잡고 수면 위로 올라와 밀린 숨을 쉬는 것이다. 요즘 내 경우엔 그의 기사들이 그랬다.
훌쩍 떠나온 캠핑도 벌써 밤이 되었다. 캠핑처럼 시간이 잘 가는 활동도 없는 것 같다. 화로대에 장작을 빙 둘러 세워두곤 불을 붙였다. 바람을 타고 장작이 타닥타닥 탄다. 멍하니 피어오르는 불을 보며 함께 떠나온 친구에게 물었다. 너에게도 저렇게 태우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친구는 담담하게 이야기했고 이어 내가 던진 질문에 나도 대답했다.
‘나는 요즘 ‘내가 적어도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을 태우고 싶어. 어느 기사에서 읽었는데 사람은 누구나 적어도 자기가 보통 이상은 된다고 생각한데. 그래서 작은 실패에도 힘들어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는 거라고.
그걸 읽는데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해서 마음의 균형이 흔들리는 일이 다 내 기준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더라? 그 기저에는 적어도 나는 좀 나은 사람이라고, 상대의 말에 공감을 해주면서도 결국 내가 맞다는 오만이 있는 것 같더라고.’
이렇게 말하고 그렇게 말을 한 스스로에게 놀랐다. 훌쩍 떠나온 캠핑에서 얼굴도 모르는 이가 쓴 문장을 생각하고 있다니, 아무래도 그 글이 내 속 깊은 곳으로 들어왔던 모양이다. 일을 하며 고민하고 있던 문제들이 알맞은 열쇠를 만나 좁은 방문을 탈출하는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자신감 부족이란 생각은 해도 자의식 과잉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시간과 함께 경험이란 게 생기고, 그 경험은 나에게 어떤 삶의 데이터나 굳은 살 같은 역할을 해서 나를 지켰으니까. 하지만 때로는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못난 점을 돌아볼 필요도 있을 테다. 부족함을 찾고 힘들다고 말하기 전에, 분위기와 상황에 흔들리기 전에, 내가 누구이고 어떤 마음인지 귀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떠나보면 이런 생각을 할 틈이 생긴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저냥 보낼 마음들이 숨구멍을 찾아 터지며 정리가 된다. 친구와 떠나온 어느 캠핑장에서 타오르는 화로대를 보며 못해도 계절에 두 번은 나를 위해 꼭 떠나보자고 생각했다.
- written by 청민 │ 202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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