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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꼭 완독하지 않아도 괜찮아

our warm camp/ESSAY

by Chungmin 2023. 3. 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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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오면서 대부분의 책을 정리했다. 고작 원룸에서 200권 넘는 책이 나왔다. 긴 고민 끝에 하나 있던 큰 책장도 버렸다. 서랍마다 숨어있는 책을 다 꺼내선 꼭 간직하고 싶은 책 50권만 남겼다. 나머지는 친구에게 나눠주거나, 당근을 하거나, 아쉬움 없이 중고 서점에 팔았다. 그리고 책을 팔아버린 돈으론 이사 비용을 보탰다.

 

한때 책이란 절대적인 물건이라 여긴 적이 있다. 그러니까 책은 자고로 한 번 품에 들어오면 끝까지 품어야 하고 한 번 펼치면 완독해야 한다고 말이다. 고고하고 고상한 것. 지금 생각하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느끼는 죄책감이 얼마나 별거 아닌지 모르겠다만 예전에 나는 약간의 허영심을 가지고 있었다. 책은 조금 더 멋진 것, 꼭 읽어야 있어 보이는 것.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잘 읽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도무지 읽기 싫으니 이삿짐을 싸며 항상 폭탄을 맞는 것이다.

 

요즘은 어떤 책이든 완독하지 않는다. 읽다가 영 집중이 되지 않거나 기대했던 내용과 다르거나 노잼일 때는 과감하게 페이지를 덮어버리고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 다시 펼친 책이 또 노잼이면 다시 덮고선 책장 틈에 끼워두고 새로운 책을 꺼낸다. 그러니 내 의자 옆에는 항상 책 탑이 쌓여 있다. 완독하지 않아도 되니 한 번에 한 권의 책만 읽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책에 대한 죄책감은 출판사에서 일하며 다 버릴 수 있었다. 출간 전 검토해야 하는 원고만 해도 한가득이니, 퇴근 후엔 텍스트 근처에도 가기 싫었기 때문.(물론 나와는 반대로 퇴근 후 자기만의 독서 시간을 더 채우는 분도 있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읽기 싫은 발버둥이 더해지니, 어느 순간 책을 펼치지도 않는 나를 발견했다. 나름 책밥 먹고 사는 사람인데 일주일에 한 권도 읽지 않는다니. 책과 멀어지고 있던 어느 날 선배가 말했다.

 

'그런데 책은 꼭 완독하지 않아도 되잖아? 내가 재밌는 게 중요한 거지.’

 

아! 그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선배의 말이 맞다. 내게 재밌는 게 중요한 거다. 세상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맞지 않는 책과 씨름하며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출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덮어버리는 책 자체가 별로라거나, 한 번 덮었다고 다신 펼치지 않는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인간관계처럼 책과의 관계도 타이밍이 맞지 않을 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지금은 노잼이라며 덮어버려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찾게 되는 책도 있으니까. 사람도 책도 취향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책은 꼭 완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다. 내게 맞지 않으면 쿨하게 넘어가고, 다시 펼친 책도 노잼이면 밀린 드라마를 보거나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의 영상을 정주행하면 된다. 그러다 그 사이클이 다시 지루해지면 책장 속 재밌어 보이는 책을 여는 것이다. 오래전엔 그냥 덮어버린 책이라도 다시 펼쳤을 때 새롭게 느껴진다면, 그때 자연스레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꾸준히 좋아하기 위해서는 흥미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러니 무엇이든 재밌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즐거워야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이래도 저래도 여전히 읽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책 읽는 아버지 뒷모습을 보고 자란 덕이기도 하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단 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 탓이 가장 클 테다. 좋아하니까, 꾸준히 좋아하고 있으니까. 묘한 죄책감도 즐거움도 찾을 수 있는 것일 테니.

 

* 그래서 지금 동시에 읽고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

- 동쪽 빙하의 부엉이

-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

-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너무 좋다아)

-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

 

결국 책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그럴 필요가 없어요. 미안해할 것도 아니고 부끄러울 일도 아닙니다.
다 읽지 못한 책을 책장에 꽂아둔다고 큰일 나지도 않고요.

버리시거나 헌책방, 중고서점에 팔거나
그 책을 좋아할 것 같은 사람에게 선물해도 좋겠지요.
그저 안 읽힌다면, 흥미가 없다면 그 책을 포기하시면 됩니다.
굳이 완독하지 않아도 됩니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중에서

* 나와 완전 똑같은 마음을 가진 이동진 저자의 문장을 공유한다. 완독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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