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작은 자전거 브롬톤을 탑니다

our warm camp/OUTDOOR

by Chungmin 2024. 2. 19. 12:48

본문

 

'245만 원짜리 자전거라니..'

브롬톤 자전거 가격을 검색해 보고 생각했다. 신입사원 평균 월급과 맞먹는 저 비싼 자전거는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을 거라고. 월세와 관리비, 생활비, 적금, 핸드폰 요금처럼 필수적인 돈을 내고 나면 매달 빠듯한 생활이었지만 틈이 날 때마다 ‘브롬톤 자전거’를 검색해보곤 했다.

 

다시 자전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신입사원이 되고 나서였다. 집 회사 집 회사.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생활에 내가 하는 것이라곤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는 일뿐이었다. sns란 원체 삶의 하이라이트만 업로드하는 곳이라는 걸 알지만 퇴근 후 누워만 있다 보니 자꾸만 우울해졌다. 부를 친구도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선 즐거울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하루는 마음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시 자전거나 타볼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퇴근길에 공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울적할 땐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면 자연스레 해결된다는 걸 오랜 캠핑 생활을 하며 알고 있었으면서 반복되는 생활에 잠시 잊고 지냈던 것이다.

 

퇴근 후 집 근처 호수공원에서 자전거를 빌려 달리던 날 맛보았던 행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탔던 자전거였는데 그날 느낀 행복은 조금 특별했다. 한여름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뭉쳐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갈 때면 하루 끝에 나를 괴롭히던 자잘한 두려움도 어느새 사라졌다.

 

회사 일과 다르게 자전거는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 익숙하고 능숙한 것. 퇴근 후 자전거를 타며 더 이상 잃을 것 없을 것 같던 자존감 창고에 작은 용기들이 다시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 게 얼마만인지. 해내야만 해서 노력하는 일 말고 그냥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가득 반짝이는 건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자전거도 달리며 구경하곤 했다. 바퀴가 저렇게 두꺼운 자전거도 있구나, 안장을 낮게 타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러다 운명처럼 브롬톤 자전거를 마주쳤다.

 

투박한 로드 자전거들 사이로 달리는 작은 미니벨로 한 대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쩜 저렇게 예쁘지. 특히 메인 프레임이 매끈한 곡선인 게 얼마나 특별해 보였는지 모른다. 또 접힌 모양은 얼마나 작고 예쁘게 접히는지. 그 즈음 처음 브롬톤 자전거를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깟 자전거가 뭐라고. 한 번 마음을 빼앗기고 나니 거리에서 브롬톤 자전거만 보였다. 겉으론 촌스러워 보일까봐 티는 못 내면서 길에서 브롬톤 자전거를 마주칠 때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하지만 나는 자꾸 망설였다. 비싼 값이 부담이 되기도 했고, 큰 값을 치르고 샀는데 좋아하는 마음이 금방 식어 버릴까 봐. 그래서 내게 1년의 유예기간을 주었다. 꾸준히 하루 중 틈을 내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마음을 오래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일 년이 넘도록 나는 꾸준히 퇴근 후 자전거를 탔다. 호기심이 많아 무언가를 오래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여겼는데 자전거를 좋아하는 마음은 좁아지기는커녕 조금씩 자라났다. 보다 저렴한 미니벨로를 구입해선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뿐 아니라 우체국도 가보고, 버스 타고 가기엔 애매해서 망설이기만 했던 카페에도 가보고, 회사 출퇴근도 해보았다. 더 나아가 망원이나 파주같이 일산과 가까운 옆 도시도 다녀오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조금씩 용기를 내는 나를 보며 마음을 먹었다. 브롬톤을 사자,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카드를 내밀던 손이 왜 그렇게 바들바들 떨리던지. 브롬톤 자전거 손잡이를 끌고 가게 밖으로 나오는데 왜 그렇게 설레던지. 세상에! 나 브롬톤 샀어! 절대 내 것이 될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손에 쥐어졌을 때의 기쁨이란. 생애 처음으로 나를 위해 치르는 비싼 값이었다.

 

브롬톤을 사고 나의 세계는 더 넓어졌다. 단순히 동네 이동 수단을 넘어 자전거에 텐트를 매달고선 가벼운 캠핑을 다니며, 더 나아가 도시 안팎의 경계를 오고 가며 페달을 밟는다. 아주 작게 접혀 다른 이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어서 대중교통을 타고 더 멀리 다녀올 수 있다.

 

자전거를 타면서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반복되는 오늘이 지루하다고만 여겼는데 페달을 밟고 길을 나서며 오늘도 작은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나 할까. 좋아하는 걸 깊숙이 좋아하면서 나도 꽤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걸, 마음먹은 곳까지 다녀올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금 툭 기억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되었다. 작은 자전거 브롬톤과 함께 오늘도 열심히 달리며, 작은 용기를 쌓아가면서.

 

 

 

- 2021. 12. 30

 


Copyright 2024. our warm camp All rights reserved.

사전 동의 없는 무단 재배포, 재편집, 사용을 금합니다. 이 콘텐츠가 좋으셨다면 링크로 공유해주세요!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