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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보드는 넘어지며 배우는 거야!

our warm camp/OUTDOOR

by Chungmin 2024. 3. 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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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보드를 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길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친다. 작은 보드와 함께 힘껏 뛰어올랐다가 아스팔트에 고꾸라지는 모습은 길을 가던 이들의 발걸음을 자주 묶어 두었다. 미끄러질 듯 미끄러지지 않고 균형을 잡아내는 모습과 몇 번이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넘어지는 걸 반복하면서도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달까. 넘어지며 깨우치는 웃음은 어느 정도의 재미를 가졌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럴 때 찾아갈 사람은 딱 한 명, 동생 찬이다. 찬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드를 좋아했다. 여섯 살, '언덕에선 위험하니 씽씽카를 타면 안된다'던 엄마의 당부에도 몰래 언덕의 스릴을 즐기다가 얼굴과 팔을 시원하게 쓸어버릴 때부터 그의 특별한 DNA를 알아봤어야 했는데.

 

보드란 외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저기 어딘가 미국 하이틴 문화 같은 것일 뿐이지 실제로 한국에서 타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던 시절. 어른들은 보드를 타는 애들을 '날라리' 혹은 '위험한 걸 하는 애들'로 바라보곤 했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도 찬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보드는 그냥 재밌으니까 타는 거라며. 그렇게 찬은 S보드, 웨이크 보드, 스케이트보드, 롱보드를 거쳐 크루저 보드에 정착했다. 그것도 발 두 쪽을 다 올리면 틈도 없어 보이는 22인치 페니 크루저 보드였다.

 

해외에서 직구로 주문한 한정판 페니 보드가 집에 도착하는 날, 찬은 택배보다 한 발짝 늦게 도착해서 엄마에게 새 보드를 산 걸 들켜버렸는데 그날 찬이 내게 보낸 문자가 떠오른다. ‘누나, 택배 좀 먼저 받아줘!!’

 

당시 우리 집은 도시의 한 가운데 있었고 보드는 도시에서 타는 문화를 가졌음에도 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보드를 안전하게 탈 공간이 없다는 걸 인지한 엄마는 찬을 염려했다. 혹시라도 크게 다칠까 봐서. 그런 엄마의 걱정에도 찬은 학교를 갈 때 몰래몰래 보드를 챙겨 다녔다. 찬의 22인치 크루저 보드는 하도 작아서 백팩에 몰래 가지고 나가면 가족 중 아무도 알아챌 수 없었다. 베란다 구석에서 보드가 없는걸 뒤늦게 알아챈 엄마는 혹여나 차와 부딪치지 않을까, 잘못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곤 했다.

 

나도 찬이 의아했다. 그 시절, 보드는 주류 스포츠가 아니었고 도시가 낯선 문화를 받아들여 공간을 내줄리는 없었다. 위험하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으며 다칠까 걱정까지 해야 하는데 쟤는 저걸 꼭 타야만 할까. 네가 좋으면 타는 건긴 한데... 마음 한구석엔 의아함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보드가 타보고 싶어진 것이다. 시대와 시간이 지나면서 보드를 타는 사람도 늘어나고 문화에 대한 유연함도 성장했기 때문이다. 보드를 타보고 싶다는 나의 말에 동생은 능숙하게 내가 보드를 어떤 용도로 타고 싶은지 물어보고 어울리는 보드를 추천해 줬다. 알고 있는 가게 몇 곳을 데리고 가선 설명해 줬고 한국 숍에선 팔지 않는 특이한 디자인을 소개하고 직구까지 쉽게 스윽 해주었다. 덕분에 큰 품 들이지 않고 인생 첫 보드를 얻었다. 나의 첫 보드는 주행용 크루저 보드로 찬의 보드보다 조금 큰 27인치 페니 보드다.

 

ⓒ동생 찬 제공, 동생이 타던 페니 보드와 직접 수리하는 모습

 

보드가 도착하고 찬은 자연스레 보드 타는 법을 알려줬다. 전에는 쟤가 잘 타는 건지 뭔지 크게 관심 없었는데 내 마음이 ‘관심 없음’에서 ‘타보고 싶다’로 옮겨지니 보드를 시원하게 타는 찬이 그렇게 멋질 수 없었다. ‘위험한데 보드를 왜 타?’ ‘꼭 학교 갈 때 타고 가야 해?’라고 묻던 질문을 오랜 시간 견디고, 좋아함을 계속 쌓아낸 찬만이 가질 수 있는 결과였다.

홀로 독학을 했다면 쉽게 알 수 없었을 팁을 찬은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가령 균형 잡는 것에 신경 쓰느라 보드를 푸시 하는 발을 내가 짧게 치고 있다거나, 균형이 어렵다면 나사를 조금 조이면 (방향 전환은 조금 뻑뻑하지만) 흔들림은 적어질 거라는 것 말이다.

 

‘누나, 보드는 넘어지며 배우는 거야.’

‘원래 처음 해보는 자세는 넘어질 수밖에 없어.’

‘보드를 한 번 타고 길게 타야 해. 어차피 발로 푸시를 할 거면, 길게 타야 쉽게 갈 수 있어.’

 

보드를 직접 타보면서 찬이 해주는 조언을 들으며 생각했다. 찬은 그저 보드를 타는 게 즐거웠던 거구나. 그냥 좋아했을 뿐이구나.

 

혼자 인터넷으로 보드에 대한 정보를 공부하고, 낯선 골목에 숨어 있는 보드 가게를 찾아가 물어 배우고, 학교를 오고 가는 틈틈이 보드를 타보고, 또다시 팔을 갈아엎으며 넘어져 보고.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찬은 그냥 좋아서, 보드가 재밌으니 했던 거구나 싶었다. 

 

시대와 시대가 갖는 시선이 달라지니 나도 이제야 찬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냥 좋아한다는 마음에 ‘네가 보드를 타는 이유를 설명해 봐’라는 속 좁은 태도로 강요한 누나였던 것 같아 살짝 슬펐는데 쟤는 (속도 없는지) 나한테 이렇게 친절히 보드 타는 법을 알려준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으면서 찬의 진짜 마음을 늦게 알아버린 듯했다. 

 

이제는 내가 주말마다 보드를 가지고 나가선 넘어지고 엎어지며 보드를 연습한다. ‘길게 타’라는 찬의 말을 기억하며 보드를 밀 때마다 깨어지지 못한 시선으로 누군가를 바라봤던 날들을 다시금 되새긴다. 보드는 재밌다. 재밌어서 좋다. 좋으면 타는 것. 그 뿐이다.

 

 

나의 첫 스케이드 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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