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2일차. 동생이 출근하는 소리에 깼다. 예전엔 머리만 대면 그렇게 잘 잤는데 요즘은 피곤하면 잠을 더 못자는 것 같다. 시간을 거슬러 오느라 쌓인 피로가 각성된 기분이다. 눈 뜬 김에 일어나 베이글과 토마토 등으로 도시락을 싸고, S가 메시지로 캐나다 가면 먹어보라던 과자를 소분해 함께 챙겼다. 메이플 시럽과자라니! 넘 맛있겠다.
밴쿠버 날씨를 아직 가늠할 수 없어서 동생 바람막이와 모자를 쓰고 나왔다. 안에는 스웻 셔츠랑 반팔을 입었다. 입고 보니 패션이 신호등이다.(옥택연 신호등 패션 아는 연배 나오세요..) 날씨를 가늠할 수 없을 땐 이렇게 입고 벗기 힘든 옷 보다 후드 집업이나 자켓이 훨씬 편하다. 낮엔 더워서 저 바람막이 벗으려니 되게 귀찮았다.
2019년 몽골이 마지막이었으니.. 해외에 너무 오랜만에 나왔다. 몸도 마음도 체력이 모두 최하점을 찍은 상태로 떠나온 거라 낯선 외국의 환경은 나를 더 긴장하게 한다. 핸드폰에 받은 구글 맵 하나 의지하여 아는 사람 없는 도시로 뛰어든다. 설렘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순간이다.
* tip.
밴쿠버 버스는 앞에서도 중간에서도 탈 수 있다. 내릴 때도 카드를 찍는 서울과는 다르게 탈 때 카드를 한 번만 찍으면 된다. 내릴 때는 중간 중간 있는 빨간 버튼을 눌러도 되고 창문에 연결 되어 있는 긴 줄들을 당기면 된다. 처음엔 창문에 이어진 줄들이 뭔가 했는데 stop 버튼이었다. 처음엔 당기는 것도 긴장 되었는데 지금은 귀엽기만 함!
스탠리 공원(Stanley Park)
Vancouver, BC V6G 1Z4
스탠리 공원에 도착했다. 19번 버스를 타니 입구에 한 번에 도착했다. 집에서 나와 길 잃지 않고 버스를 타고 정거장을 제때 내리는 데 에너지를 꽤 많이 썼다. 공원 표지가 보이니 마음이 놓인다. 휴, 이게 뭐라고!
* tip.
밴쿠버는 요상하게 데이터가 잘 안터지는 곳이 중간 중간 많아서 구글 지도를 미리 다운받아 두면 편하다.
but 구글 지도는 오프라인 시 자동차 기준으로만 볼 수있다. 도보나 버스로 가는 법을 볼수 없어서 길 찾기 무지 힘드니 출발 전에 꼭 가능 방향과 버스 시간을 캡쳐해 두자.
날이 좋다. 밴쿠버는 지금 이 시기에 레이니쿠버라고 불릴 정도로 매일 비가 오는 우기 시즌이라는데, 오늘은 그 말 다 거짓 같다. 날 좋은 가을이다. 햇볕이 강렬한데 기분 좋게 따듯하다.
공원에 입장하면서부터 활동적인 사람들을 만난다. 자전거 타는 사람, 스케이트보드 타는 사람, 걷는 사람, 러닝 하는 사람. 옷차림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두꺼운 집업을 입고 누군가는 핫팬츠에 나시를 입는다. 블로그에 밴쿠버 9월 날씨 검색하니 하루에 사계가 다 있다길래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 말이 맞다. 아침 밤은 춥고 낮은 덥고 비가 왔다가 해가 쨍했다고 한다.
밴쿠버는 차가 없으면 힘들다. 어디든 땅덩이가 넓으면 그렇다. 새삼 대중교통으로 못 갈 곳 없는 한국이 감사해진다. 아침에 동생에게 지도를 보며 이 정도면 그냥 걸어가면 되는 거 아냐? 했다가 누나.. 여긴 한국이 아니야 얘기를 들었는데 진짜 캐나다 크기는 어마 무시하게 넓고 크다.
공원 초입에서 냉큼 도시락을 까먹었다. 토마토와 베이글, 베이컨, 계란 등. 이래 보여도 탄단지가 다 있다. 텀블러에 내려온 커피를 홀짝이며 바다가 보이는 풍경에 감탄한다. 와, 내가 캐나다라니! 여기가 캐나다라니!
* tip.
지도에서 보니 스탠리 공원을 한 바퀴 다 돌면 8km 정도라고 한다. 오늘은 해변을 따라 한 바퀴를 걷고, 공원과 연결된 잉글리시 베이와 선셋 비치까지 가볼 생각이다. 다 하면 10km가 넘을 듯하다.
나중에 시계 방향으로 돌아야 해변이 금방 나오고 예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나는 반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그래도 예뻤고 몇 번을 돌아도 나는 이 방향이 더 예쁘다.
걷다 보니 스탠리 공원과 노스 밴쿠버를 연결하는 라이온스 게이트 다리(Lions Gate Bridge)를 만나게 된다. 와- 파란 바다 배경에 있는 거대한 다리 무지 예쁘다! 그 아래론 크고 작은 배들이 지나간다. 사진으로 다 담기지 않는 웅장한 아름다움이다. 서울의 직장인으로 빽빽한 빌딩과 책상 속에만 있다가 여길 오니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고 재미있다.
스탠리 공원을 오른쪽으로 돌면 암벽을 볼 수 있다. 하반기 최애 취미가 클라이밍이라 그런지, 돌이 그렇게 예쁘고 눈에 잘 보인다. 현재 하고 있는 것은 실내 볼더링인데, 요즘은 거기서 확장되어 자연 암벽 영상 보는데 빠졌다. 스탠리 피크를 걸으면서도 '저 돌 되게 잡고 싶게 생겼다'하는 돌이 많았는데, 돌아서니 클라이밍 하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어서 너무 웃겼다. 역시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똑같구나! ㅋㅋ
서드 비치(Third beach)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아름다운 포인트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나는 이 서드 비치에 마음이 빼앗겼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들, 스케이트보드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오는 사람들. 해변에 훌러덩 벗고 누워 있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소위 말하는 자기 쪼대로 남 신경 쓰지 않고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자유로워 보였다. 다음에 나도 돗자리 가지고 와서 실컷 누워 햇빛이나 쬐야지!
* tip.
서드 비치 뒤에 모비 공유 자전거 빌리는 곳이 있다. 스탠리 공원 초입에서 모비를 빌린 다음, 서드 비치에서 자전거를 반납하고 즐기면 좋다. 밴쿠버 지내면서 나의 최애 코스였다.
자유로운 풍경 속에서 평안을 찾아가는 나, 한 컷.
걷다 보니 다양한 형식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을 본다. 스케이트보드,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 등! 모두가 함께 쓰는 도로이니 서로를 존중하자는 푯말을 볼 때마다 신기하고 귀엽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자전거 타고 해안 길을 달리면 무척 좋을 것 같다. 빠른 시일 내에 중고 자전거를 사던가 공유 자전거를 결제해야겠다. 브롬톤 가지고 올걸, 왜 그냥 왔냐 나야!!
계속 햇볕을 맞으며 걸으며 처음엔 풍경에 감탄하고 행복하다가도, 감정이 한 사이클을 돌아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들을 곱씹게 된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또 되고 싶어서 퇴사를 한 건가 생각하게 되고. 지금 이게 맞나 싶고..
그걸 좀 반복하다가 보니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조금 선명해진다. 어떤 도구를 활용하든 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고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욕망을 (그걸 생각한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받지만) 잘 알아채고 배워서, 매력적인 이야기를 더 잘 만들고 싶다.
밴쿠버 2일차. 스탠리 공원을 한 바퀴 걸으며 앞으로 어렴풋이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잘할 수 있으려면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정리하고 결론을 지었다. 오케이, 나 뭐 하고 싶은 거 알았고! 퇴사는 이미 해버렸고! 그럼 뭐 어쩌겠어, 그냥 해봐야지!
Ferguson Point & 계절의 효능
7501 Stanley Park Dr, Vancouver, BC V6G 3E2
해변가에 있는 Ferguson Point 쪽의 벤치에 앉아, 퇴사할 때 그림책 팀장님께서 선물해 주신 『계절의 효능』을 꺼내 읽는다. 회사 다니며 해드린 것도 별로 없는데 이렇게 큰 마음을 받으면 어쩔 줄을 모르겠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햇살을 맞으며 즐겁게 가을 파트를 읽었다. 책 디자인만 예쁜 줄 알았는데 기획도 소재도 너무 좋은 책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읽으면 무지 좋을 책, 추천한다!
잉글리시 베이 비치(English Bay Beach)
Beach Ave, Vancouver, BC V6C 3C1
고요한 서드 비치에 비해 잉글리시 베이엔 인싸 언니 오빠들(!)이 많이 보였다. 비키니를 입고 발리볼을 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미드 영화 같은 모습으로 자유로이 수다를 떤다. 내향과 외향이 딱 반반인 나 같은 사람은 기가 빨려서 서둘러 자리를 옮긴다. 밴쿠버에서 지내며 서드 비치는 그렇게 많이 갔는데 잉글리시 베이는 딱 한 번 갔다.
이 사진들은 선셋비치 가는 길. 이날 햇살이 너무 따듯하게 내리쬐었다. 특별한 것 없이 나무랑 바다랑 햇살이 있을 뿐인데 여기서 회복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선셋비치 사진은 외장 하드에 백업해 두었는데 현재 쓰던 노트북이 아닌 맥으로 블로그를 쓰고 있어 사진을 로딩할 수 없다. 한국 가서 선셋 비치는 여기 아래에 추가해 보겠음!
다운타운 속 자전거 타는 사람들
캐나다 와서 가장 놀란 것은 다운타운 속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밴쿠버 시내는 자전거가 무척 잘 되어 있고, 일단 자동차가 쌩쌩 달리다가도 도로에 사람이 오면 멈춰서 사람 먼저 보낸다.(충격)
또 자전거 도로가 독립적으로 따로 존재한다.
자동차나 인도의 자리를 빼앗아 어설프게 만든 게 아니라, 인도/자동차 도로/자전거 도로 이렇게 분리되어 있다.(또 충격)
헬멧 없어서 자전거 타도 안전한 도시라는 얘기를 들었는데(물론 자전거 탈 땐 가능한 헬멧을 써야 합니당)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내가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도 안전하다는 감각을 가지고 탈 수 있는 곳이었다, 밴쿠버는..
나는 이렇게 또 브롬톤 가지고 오지 않은 걸 다시금 후회한다.
오늘의 움직임
오늘의 걸음: 21,971대략 걸은 거리: 15km
(스탠리 공원 해안 길 따라 1바퀴 + 잉글리시 베이 + 선셋 비치 + 다운타운 + 집까지 걸어온 거리)
밴쿠버에서 한 달 살기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 달을 살게 되었다. 삶에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밴쿠버에서 한 달 동안 먹고 걷고 즐긴 하루들을 기록한다. 빅잼은 없어서 피식잼은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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