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이방인》은 2023년 쿠팡 플레이에서 수지 주연의 드라마로 주목을 받은 《안나》의 원작 소설이다. 드라마로 먼저 접했기에 (이미 내용을 다 안다고 여겨) 소설에 대한 흥미도는 조금 떨어졌는데, 3페이지가 넘어가는 순간 편견이 와르르 깨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친밀한 이방인》은 드라마 뺨치게 재밌다. 드라마는 소설의 일부만 조명했을 뿐, 이유미 그러니까 안나의 세계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거대했다.
《친밀한 이방인》은 드라마와 다르게 이유미가 아닌 제삼자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소설가 '나'가 오래전 쓴 소설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신문에 연재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추적하는 중에 이유상이라는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며 이유상이라 불리는 한 사람이 다양한 이름과 성별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새로운 소설을 쓰기 위하여 이유상이라고 불리면서 안나, 엠, 이유미로도 불린 한 사람의 세계를 쫓게 되는 구성으로 이어진다. 소설가는 그의 주변 인물들을 만나 그에 대한 기억을 수집하고 점차 이유미에 대한 큰 조각을 맞춰가게 된다.
이유미에 대한 정보가 늘어날 때마다 나는 그가 어느 부분 죽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도 아니, 그는 누구보다 살고 싶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이유미의 시작은 사소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가난한 집에서 지원해 주는 아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마음, 친절한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고 싶던 마음. 작은 결핍은 사소한 거짓말을 만들어 냈고, 이는 이유미로 하여금 가짜 대학생을 연기하게 하며 더 큰 허영을 만들어 냈다. 드라마 안나에선 이유미가 미술관에서 일할 당시 주인의 명의를 도용하여 교수직까지 오르는 것까지 집중하였으나, 소설에선 그 이후 이유미가 남자인 이유상이 되고 엠이 되는 모든 과정을 담고 있다.
이유미를 지켜보며 그가 잘못되었다는 안타까움 보단 측은함이 들었다. 그의 욕망은 모든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결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아나스타샤'라고 불리며 사랑받았던 어린 유미는 어쩌다 거짓말로 점철된 사람이 되었을까.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것을 꼭 이유미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향과 욕심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을 듯했다. 가해자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이건 소설이니까. 그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이 그를 얼마나 외롭게 만들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유미에게는 소설 밖 관객의 마음까지 얻게 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힘이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삶이란 무엇일까 자주 생각했다. 잘 사는 집 같아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차마 밖으로 말하지 못한 엉망진창인 모습들이 하나씩 있다. 이처럼 소설 속 인물들도 자신들의 평화를 위해 진짜 현실을 치밀하게 가려둔다. 욕망을 겉으로 드러낸 이유미와 그 외의 인물들이 무엇이 다른 건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책장을 덮을 땐 그 의문이 나의 삶까지 오게 된다. 우리는 모두 진실한가, 그럼 모두가 보고 있는 것들 중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더불어 《친밀한 이방인》은 단순히 이유미라는 한 인물이 꾸민 사기극만 그리지 않는다. 이제 더 새로운 거짓말이 없겠구나 생각할 즈음 엄청난 반전이 나타난다. 뒤통수를 후려 맞은 것처럼 얼얼한 반전이라 그 페이지만 두어 번을 다시 읽었다. 드라마를 재밌게 보았다면 이 소설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소설 자체가 흡입력 있어 하루 만에 다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오랜만에 읽는 즐거움을 선물해 준 책이다.
문장 속으로
• 우리는 좀더 노력해볼 수도 있었다. 시간을 두고 흩어진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볼 수도 있었다. 나중에는 모든 것이 인생의 과정이었다고 추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 모든 삶의 가능성을 단번에 잘라내고, 차라리 민둥산처럼 헐벗는 쪽을 택했다. 삶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것 말고는 처음으로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다시 시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p.240)
• 나는 늘 거짓말쟁이와 사기꾼들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들이 꾸는 헛된 꿈, 허무맹랑한 욕망이 내 것처럼 달콤하고 쓰렸다. 나는 그들을 안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로 그들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런 착각, 혹은 간극 속에서 이야기를 쓰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야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 도서 │ 친밀한 이방인
• 작가 │ 정한아
• 출판 │ 문학동네 @munhakdon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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