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콘텐츠를 마감하고 나면 맥이 탁 풀린다. 기획-제작-마감하는 2주 동안 수많은 피드백을 받고 고치고 다시 피드백을 받고 고치다 보면 어느 순간 멍해지고 돌아버릴 것 같은데, 일단 발행을 하면 쌓이는 알람 숫자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발행은 목요일 새벽 7시. 솔직히는 수요일 예약 발행을 해도 밤새 평안하지 못하다. 목요일 아침까지는 심장이 떨린다. 마감까지 콘텐츠를 수없이 확인하지만 바로가기 링크가 걸리지 않은 글이 있을까, 맞춤법이 틀렸을까, 논란이 되는 표현이 있을까 몇 번이고 마음을 졸이곤 결국 새벽 4시가 다 되어 진이 빠진 다음에 잘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루틴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마감을 반복하다가 어느 날, 처음으로 마감 후 홀로 자축했다. 수고했다. 분명 마감 때마다 몇 번이고 듣는 말이지만, 불안에 가려져서인지 와닿지 않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분명 일하면서 즐겁고 성취감이 느껴지는 순간도 분명히 있을 텐데 마감 루틴에 갇히면 그것을 쉽게 잃어버린다. 시간은 빠듯하고 당장 결과물은 나와야 하고 그 와중에 트렌드와 인풋을 꾸준히 넣어야 한다는 어떤 압박감이 서서히 나를 조인다. 끝나지 않은 굴레에 들어온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이 걸 몇 번이나 더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어떻게든 완성한 내가 불쌍하고 기특하고 힘들었겠다 싶어 혼자 마감식을 챙긴다.
오늘의 마감식은 자주 가는 미스터 교자. 회사 뒤에 있는 아주 작은 가게다. 들어서자마자 시원한 기린 생맥주를 시킨 다음 천천히 메뉴를 본다. 끝났다는 안도감은 사람을 조금 들뜨게 조금 울적하게 한다. 아래는 여러번 마감을 할 때마다 방문했던 사진들 모음이다.
여러 잔의 술을 마시면 얼굴이 금새 뜨거워진다. 약간의 취기가 오르며 이런저런 생각이 쏟아진다. 잘 가고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사람도 없다. 물어볼 용기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와달라고 요청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홀로 삼키는 감정들이 쌓인다. 어떻게든 혼자 잘 이겨내고 해결할 수 있는 거 알면서도 기대고 싶은 마음이 해결되지 않을 때 홀로 이곳을 찾아 마감 기념 식사를 한다. 다른 사람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100%를 이해할 수 없지만, 나는 나를 알지. 나는 나를 알고 있지.
자, 오늘 즐거웁게 먹었으니 내일부터 다시 마감 루틴을 시작해 보자. 파이팅!
- 2023. 05 어느 날에
* 글 속의 마감식이란 단어는 '소설가의 마감식: 내일은 완성할 거라는 착각 (띵 시리즈 22)' 책 제목에서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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