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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 봄동 무침, 조용히 다가오는 봄의 향

our warm camp/FOOD

by Chungmin 2024. 2. 1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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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에 고모를 만났다. 할머니가 집에서 넘어지시며 갈비뼈가 두 대나 부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간 할머니 댁에서였다. 오랜만에 본 얼굴들이 반가우면서도 매번 시절이 지나있는 얼굴을 볼 때면 기분이 이상하다. 내 기억 속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고모도 더 젊은 모습이었는데. 그러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서른 중반이 된 걸 기억하며 시간이란 얼마나 빠르게 반복되는가 생각한다.

 

할머니는 고모의 지극정성한 돌봄 덕에 집 안에서 불편함 없이 움직이고 계셨다. 뼈는 아직 붙진 않았지만 조금씩 움직여도 된다고. 밥을 먹지 않았다는 나의 말에 고모는 마침 잡채를 해두었다며, 냉장고서 만들어 둔 반찬 여러 개와 된장국을 꺼내주었다. 그리곤 큰 그릇에 조물조물 야채도 고춧가루에 섞어 내주었다. 오랜만에 먹는 고모 밥을 먹으며 고모랑 춘천에서 한 달 동안 함께 살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 아빠가 미국으로 출장을 갔을 때다. 나는 고등학생, 동생은 중학생. 요리라곤 짜파게티도 어설프게 끓이는 우리가 걱정이 되었는지 고모가 한 달 동안 우리 집에 와서 밥도 해주고 야자가 끝나면 차로 우리를 데리고 오고 가고를 해줬다. 그때 고모가 차려준 밥상이 떠오른다. 갓 지은 흰쌀밥, 잡곡밥, 뭇국, 된장국, 잡채, 오이 무침, 생선 구이, 봄동 무침... 그때는 어려서 집안일의 수고로움 같은 거나, 올케의 집에 와서 살림을 해준다는 고모의 마음이 어떤 건지 몰랐다. 어른들은 그런 부탁도 능숙하게 해내는 존재인 줄만 알았는데, 내가 어른이 되고 돌아봤을 때 고모도 참 쉽지 않은 시절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고모가 오랜만에 해준 밥상엔 갓 무친 봄동이 있었다. 봄의 첫 배추를 한 입 크기로 썰어 겉절이 처럼 무친 봄동. 식초의 새콤한 맛이 입맛을 돋우고 고춧가루의 칼칼함이 함께 내어준 잡채와 불고기 사이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이 한다. 다른 반찬도 끝도 없이 먹게 하는 봄동 무침의 마법 덕에 평소엔 다 먹지도 못하는 쌀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봄이 온지도 몰랐는데 요 봄동 겉절이 덕에 '맞아, 봄이 다시 왔지' 알게 되었다.

 

계절은 매년 돌아오지만 언제나 반갑다. 고모와 고모가 내어준 밥이 그렇고 봄이 그렇다. 바람이 따듯해지고 꽃이 펴고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덕분에 밖에 나가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기 좋은 봄. 살면서 쌓아 온 봄의 기억들이 또다시 돌아온 봄을 기대하게 한다. 노력 없이 봄을 맛본 봄의 초입, 잊고 지냈던 열여덟 기억 위에 오늘의 봄동이 더해진다. 금방 무쳐 나온 봄동 무침엔 우리를 향한 고모의 반가운 마음이 담긴 것을 알기에 마음이 참 따듯하다.  밥상 주변으로 퍼지는 다정한 기운 덕에 알게 된 계절의 변화. 또다시 봄이 왔다.

 

 

 

 

 

 

 


 

입춘(立春) | 24년 2월 4일 무렵

24절기 중 첫째 절기로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절기. 보통 양력 2월 4일경에 해당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315도일 때로 이날부터 봄이 시작된다. 입춘은 음력으로 주로 정월에 드는데, 어떤 해는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드는 때가 있다. 이럴 경우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절기록(節氣錄) |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 시작한 기록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 친구가 있다. 봄에는 도다리 쑥국, 여름에는 참외 샐러드, 가을에는 홍시, 겨울에는 방어와 붕어빵. 그 애는 철마다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구경하는 재미를 알고 그것들로 따듯한 밥을 지어 친구들과 나눠 먹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다. 그 애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흘러가는 시간에 충실하고 싶어 기록해 보는 계절 일기. 절기록은 계절 속에서 먹고 마시고 듣고 웃으며 사랑하게 된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 Editor. Thurso 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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