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시장에서 장을 보는 친구가 있다. 그와 전화를 할 때면 수화기 너머로 '이거 얼마예요?' '고기 반 근만 썰어주세요' 같은 낯설지만 따듯한 시장의 분위기가 함께 온다. 그는 좋아하는 옷 브랜드는 없어도 자주 가는 단골 야채 가게와 정육점이 있는 사람. 제철의 과일과 야채의 종류를 알고, 그것들이 시장에 언제 나오는지 아는 사람. 티비에 나오는 음식의 레시피를 물어보면 자판기처럼 바로 읊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봄에는 쑥떡을 해 먹고, 여름에는 참외 샐러드, 가을에는 홍시, 겨울에는 방어와 과메기를 챙겨 먹는, 그래서 계절과 함께 자연스레 흘러가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게 다시금 알려준 사람이다.
그날도 그가 이전에 알려준 파스타 소스 레시피가 헷갈려 물어보려 전화를 걸었던가. 나눴던 대화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데 그날의 분위기는 떠오른다. 활기찬 시장의 소리 가운데 그는 야채 가게에서 달래와 참나물을 샀다. 야채 가게 사장님과 안부를 주고 받으며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풋풋한 봄의 향이 수화기 너머의 나에게까지 온기로 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간편한 마트나 총알 배송이 아닌, 나른한 한낮의 봄 시장서 야채를 사는 사람. 철마다 시장에 가서 식재료 구경하는 재미를 알고 그것들을 따듯한 밥을 지어 친구들과 나눠 먹는 행복을 아는 사람. 그 시절, 그 애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원래 좋아했지만 잊고 있던 마음이 봄 씨앗이 되어 다시 내 속에 심어진 느낌.
절기록은 흘러가는 시간에 충실하고 싶어 홀로 기록해 보는 계절 일기다. 계절 속에서 먹고 마시고 듣고 웃으며 사랑하게 된 순간들을 기록한다.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살아내고 싶은 마음을 더해서, 풋내 나서 향긋하고 서툴러서 아름다운 어느 계절 속 순간에 대하여.
절기록 |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 시작한 기록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챙겨먹는 친구가 있다. 봄에는 도다리 쑥국, 여름에는 참외 샐러드, 가을에는 홍시, 겨울에는 방어와 붕어빵. 그 애는 철마다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구경하는 재미를 알고, 그것들로 따듯한 밥을 지어 친구들과 나눠 먹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다. 그 애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흘러가는 시간에 충실하고 싶어 기록해 보는 계절 일기. 절기록은 계절 속에서 먹고 마시고 듣고 웃으며 사랑하게 된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 Editor. Thurso 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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