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엔 온기가 그립다. 주머니 속 붕어빵 온기로 얼얼한 손끝을 달래며 집에 돌아가는 길, 붕어빵은 제철 생선이라던 친구의 우스운 농담이 떠오른다. 풋, 붕어빵이 제철 생선이라니. 친구의 농담을 따라 겨울에 먹으면 좋을 제철 해산물을 이어 떠올려 본다. 방어는 며칠 전에 먹었고, 굴찜, 바지락 술찜. 또.. 아! 그러다 이번 겨울엔 과메기를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큰 일은 아닌데 뭔가 크게 손해 본 기분이다.
추운 날엔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수다가 그립다. 그래서 포항에서 과메기를 시켰다. 과메기와 수다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하겠지만, 과메기는 홀로 먹기 기름져서 친구들과 모여 하나씩 주워 먹는 재미가 있는 음식이다. 맑고 시원한 청주 한 잔을 털어 넣고, 세트처럼 따라오는 쌈 야채에 과메기를 하나씩 싸 먹으면 크- 그때부턴 수다도 재미도 술술 늘어난다. 꼭꼭 씹을 수록 기름과 고소한 맛이 나오는데, 과메기를 먹을 때면 한 절기 먹을 배추를 모조리 먹을 수 있을 듯 하다. 좀 느끼하다 싶으면 알싸한 마늘을 입에 하나 넣어준다. 그러다 보면 시간과 분위기는 점차 흐려지고 온갖 수다가 난무하게 된다.
혼자 살다 보면 삶의 윤택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혼자 살아 좋고 혼자 살아 깔끔하다. 분명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삶은 정돈은 되는 것 같은데, 윤기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잘 사는 것 같다가도 늦은 밤 가끔 미친듯이 매운 음식이 당기는 것처럼, 단정한 생활이 길어지면 사람들과 어지러운 수다가 무지 그리워 진다. 실수도 좀 하고 헛 소리도 좀 하면서 서로 눈만 보고도 바보처럼 실실 웃는, 정돈이라곤 하나도 없는 순간말이다. 과메기는 그런 순간이 그리울 때 곁드리기 좋은 음식이다. 집에서 따듯한 보일러를 틀어 놓고 친구들이랑 한껏 흐트러 지면서 허세 가득한 인생 얘기 하며 떠들기 좋은 음식. 밖은 추운데 우리 대화들은 끈적하고 뜨듯해서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얼큰한 행복이 올라온다. 인생 뭐 있어! 삶은 또 이런 맛에 사는 거지, 생각하면서.
모든 야식의 끝은 라면.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꼭 먼저 냄비에 물을 올린다. 매콤한 냄새에 홀려 쉬지 않고 먹어놓곤 또 맛있다며 호로롭 찹찹 먹기 바쁘다. 그러며 시작되는 2차전. 1차는 테이블 위에서였다면, 2차는 방바닥에 몸을 지지며 반쯤 누워 시작된다. 이때 하는 얘기는 뭘 해도 즐겁다. 야, 너 그때 그 남자랑 헤어지고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나냐- 오래된 친구라는 핑계로 기억하는 창피한 조각도 농담으로 마구 주고 받으며 못나게 깔깔 웃으며.
큰 추위가 오는 절기엔 사람 온기 만큼 따스한 게 없다. 내일 아침 지금의 기억이 흐릿하다면 그거 대로 좋은 겨울의 밤. 어떤 마음은 함께해야지만 채워진다. 꼭꼭 씹을 수록 고소한 겨울이다.
대한(大寒) | 24년 1월 20일 무렵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스물네 번째 절기로 ‘큰 추위’라는 뜻의 절기. 대한(大寒)은 음력 12월 섣달에 들어 있으며 매듭을 짓는 절후이다. 양력 1월 20일 무렵이며 음력으로는 12월에 해당된다. 태양이 황경(黃經) 300도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절기록(節氣錄) |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 시작한 기록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 친구가 있다. 봄에는 도다리 쑥국, 여름에는 참외 샐러드, 가을에는 홍시, 겨울에는 방어와 붕어빵. 그 애는 철마다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구경하는 재미를 알고, 그것들로 따듯한 밥을 지어 친구들과 나눠 먹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다. 그 애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흘러가는 시간에 충실하고 싶어 기록해 보는 계절 일기. 절기록은 계절 속에서 먹고 마시고 듣고 웃으며 사랑하게 된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 Editor. Thurso 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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