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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 | 꼬막무침, 봄에는 재밌어 보이는 걸 그냥 시도해 보기

our warm camp/FOOD

by Chungmin 2024. 3. 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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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음식을 해보는 걸 좋아한다. 봄만 되면 그렇게 잼이나 청을 만들고 여름이 되면 콜드 파스타나 상큼한 과일 샐러드를 달고 산다. 가을엔 과정이 고생스러워 매년 후회면서도 보늬 밤조림을 만들고 겨울엔 포항에서 과메기를 시킨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밌어서,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서.

 

번아웃이 오면서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런 작은 행복들이었다. 사람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면 좋아하는 것부터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겨우 회사를 다닐 때엔 퇴근만 하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배달 음식 용기가 문 앞에 가득 쌓였었다. 그런데 퇴사를 하고 내 삶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니 자연스레 다시 부엌에 서서 무언가를 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쌀을 씻고 밥을 지으며 미리 먹을 재료를 손질해 냉동실에 얼려두면서.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되었다. 아, 나 회복하고 있구나. 이는 절기록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음식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꼬막을 떠올렸다. 꼬막이 제철이라는 친한 선배의 말을 듣고서다. 어려서부터 크게 즐기지 않은 식재료라 이름도 낯선데 겁도 없이 꼬막을 1kg나 주문했다. 두어 번 해 먹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아 시켰는데 선배는 무식하면 용감하다 놀렸다. 하지만 어쩌겠어, 해보고 싶으면 덜컥 시작부터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걸.

 

하지만 몰랐다. 꼬막 손질이 이토록 까다로운지. 요리를 잘하는 수화기 너머의 선배의 걱정인지 잔소리인지 모를 안내에 따라 꼬막을 씻는다. 최소 3번은 씻어야 한다는 말이 오버가 아니었구나. 씻어도 씻어도 꼬막은 계속 흙을 뱉어냈다. 칫솔을 들어 하나하나 손질하고 소금물에 담그니 얘는 또 처음처럼 흙을 뱉어낸다. 꼬막을 손질하는 데는 거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꼬막이 비싼 이유는 다 있는 법이다. 에휴.

 

꼬막을 씻고 나면 그걸 또 삶고 껍질과 살코기를 분리하는 작업을 해야한다. 반복되는 작업은 지겨우면서도 그것들이 주는 리듬감이 있다. 온종일 부엌에 메여있고 손가락은 아프지만 이상하게 머리는 맑아지며 이내 작은 즐거움이 싹튼다. 잘 발라낸 살에 미리 만들어 둔 양념을 섞는다. 왠지 미나리를 종종 썰어 넣으면 맛있을 것 같아 쪽파와 함께 넣었다. 맛을 보니 성공이다.

 

어설프지만 그럴듯하게 보이는 나의 첫 꼬막 비빔밥! 역대급으로 만드는 과정이 길었지만 새로운 요리를 해봤다는 사실은 스스로를 뿌듯하게 했다. 물론 강릉에서 사먹은 꼬막 비빔밥과 비교할 순 없지만,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차려낸 낯선 밥상은 작은 성취를 선물한다. 입안 가득 퍼지는 봄의 맛이 씹을 수록 기분을 산뜻하게 한다.

 

회복은 이렇게 자연스레 찾아온다. 의식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좋아하던 것들을 다시 찾고 그 과정에서 마음은 평안과 가까워 진다. 계절처럼 나의 삶도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봄의 음식을 통해 다시금 기억한다. 완벽하지 않은 꼬막 비빔밥 앞에서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 3월 앞에 벌써가 아닌 고작을 붙여본다. 조급해하지 말고 다시 천천히 시작해 보자는 작은 결심이 선다.

 
 

 
 


경칩(驚蟄) | 24년 3월 5일 즈음
24 절기 중 세 번째 절기(節氣). 계칩(啓蟄)이라고도 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345도에 이르는 때로 동지 이후 74일째 되는 날이다. 양력으로는 3월 5일 무렵이 된다. 이즈음이 되면 겨울철의 대륙성 고기압이 약화되고 이동성 고기압과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통과하게 되어 한난(寒暖)이 반복된다. 그리하여 기온은 날마다 상승하며 마침내 봄으로 향하게 된다.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절기록(節氣錄) |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 시작한 기록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 친구가 있다. 봄에는 도다리 쑥국, 여름에는 참외 샐러드, 가을에는 홍시, 겨울에는 방어와 붕어빵. 그 애는 철마다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구경하는 재미를 알고 그것들로 따듯한 밥을 지어 친구들과 나눠 먹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다. 그 애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흘러가는 시간에 충실하고 싶어 기록해 보는 계절 일기. 절기록은 계절 속에서 먹고 마시고 듣고 웃으며 사랑하게 된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 Editor. Thurso 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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