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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복숭아 그리고 엄마
여름이면 집에서 복숭아 단내가 났다. 엄마에게서 풋풋한 단내가 나기 시작하면 또 여름이 왔구나, 밥 대신 복숭아로 배를 채우는 계절이 왔구나 생각했다. 여름은 엄마의 여섯 남매가 시골의 작은 과수원에 모이는 계절이기도 했다.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외할머니는 나이가 여든이 다 되도록 복숭아 농사를 지었다. 작은 몸과 아픈 관절로는 과실을 다 수확할 수 없으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식들이 그 시기만 되면 집으로 쫑알쫑알 거리는 병아리처럼 다시 모이는 것이다. 사실 나는 여섯 남매의 시커먼 속을 다 안다. 다들 떨어진 낙과를 줏으러 오는 것이다. 할머니네 복숭아는 키가 180cm가 넘는 막내 삼촌의 주먹보다 컸고, 웬만한 곶감보다 달았다. 한 입 가득 베어 물면 과즙이 팡! 하고 터지는 게 나는 여지껏..
2025.04.23 16:37 -
BOOK | 지난 날의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에 대하여
이 책을 선택한 건 오직 '정한아' 작가님 소설이기 때문이다. 쿠팡 플레이 드라마 《안나》의 원작 소설 《친밀한 이방인》을 읽고 나서 완전히 작가님의 이야기 세계에 매료되었다. 뭐라 해야 할까. 정한아 작가님의 소설을 읽다 보면 미묘하게 어긋난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애매한 죄의식을 신발에 작은 돌 하나가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처럼 느끼게 한달까. 평온한 삶 이면에 있는, 나 혼자 아는 인간의 가장 불편한 모습이 그의 글에는 생생히 살아있다. 정한아 작가님의 《친밀한 이방인》 리뷰https://ourwarmcamp.tistory.com/64 BOOK | 누구에게나 있는 사소한 욕망에 대하여《친밀한 이방인》은 2023년 쿠팡 플레이에서 수지 주연의 드라마로 주목을 받은 《안나》의 원작 소설이다. 드라마로..
2025.03.28 19:26 -
입춘 | 폭설 내리는 어느 봄날, 냉이 떡볶이 | 2025 절기록
그동안 새로운 2025년을 맞이했다는 느낌보다 2024년 12월의 연장을 사는 기분이었다. 나라 안팎으로 슬픈 소식만 들려오던 겨울, 그렇게 1월을 살아가던 어느 날 달력에서 시선이 멈췄다. 며칠 뒤 입춘(立春)이라고 한다. 여전히 체감온도가 -11도가 되는 겨울의 한가운데인데 벌써 봄의 시작이라니. 입춘한파가 있다고 하지만 이건 꽤 심한 일이다. 달력에서 입춘을 보고 몇날 며칠 삶에 입춘이란 글자가 둥둥 떠다녔다. 추운데 봄이라니-라는 충격보다, 정말 2025년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사실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새해엔 사람들이 무엇을 했더라. 새벽 등산을 해서 첫 해를 보고 바다를 본다. 아, 그리고 목욕을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스치자 온천이 가고 싶었다. 따듯한 물에 몸을 푹 담구고 반..
2025.02.12 13:47 -
[SOBI] 24년 11월의 물건들
소비요정의 소비일기 | 2024년 11월의 물건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소비 요정'으로 유명하다. 예쁜 물건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어느새 덜컥 사기 때문.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이건 대체 왜 산 거야?' 하는 물건이 꽤나 많다고나 할까. 물건이란 실용성도 중요하지만 자주 사용하기 위해선 심미성도 무시할 수 없다. 예뻐야 눈이 가고 눈이 가야 자주 쓰게 되니까. 물건으로도 세상은 넓어진다고 믿는달까.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이 가는 곳이 궁금하다면, 그가 돈을 쓰는 곳을 따라가 보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은 마음이 가는 곳에 시간과 돈을 쓴다고. 돌아보니 나의 소비들에는 그 순간 나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단순히 예뻐서 산 물건도 있지만 때론 의지가 담겨 있고 미련이나 계획이 담겨있기도 하다. 그래서 시작..
2024.11.28 16:41
여행로그
절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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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PLAYLIST | 시간 지나 사랑이면 그래도 사랑이면
시간 지나 사랑이면 그래도 사랑이면 긴 연애가 끝난 후 정신없이 지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났고 새로운 운동을 배우며 매일 웃으며 지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도 갔다. 그래서 정말 괜찮은 줄 알았는데, 문득 문득 차오르는 기억들은 잘 지내다가도 걸음을 멈춰 세웠다. 어느 여름 밤 한강을 산책하다가 풀피리를 보여준다며 한참을 풀과 씨름을 하던 뒷모습을 보던 순간이나 무거운 내 백팩을 보면 고리에 손가락을 쏙 넣어 들어주던 기억 같은 거. 그 애랑 나눈 대화는 잘 떠오르지 않는데 사소한 일은 왜 그렇게 떠오르던지. 이쯤되면 마음에 작은 우물 하나가 생기게 된다. 잊고 지내다가도 목이 마르면 찾아가 도르레를 내려 물 한 잔 마시고 괜히 거기에 의미 없는 소리를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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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PLAYLIST | 사랑은 아무리 해도 어려워
사랑은 아무리 해도 어려워 ✧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꾸만 누군가를 눈으로 좇고 있다면 인정하기 싫어도 이미 사랑은 시작된 걸지도 모른다. 문득 웃는 게 귀여워 보였다든지, 놀렸을 때 억울해하는 표정이 웃겼다든지.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인데 왜 자기 전에 떠올라 키득 웃게 하는 건지. 사소한 이유는 마음에 자꾸만 틈을 만들어 내고 그 사이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 자꾸만 삐져나온다. 잠깐의 호감이겠지, 금방 지나가겠지, 나랑 맞지 않는 사람 같은데. 그러면서도 시선은 자꾸만 그 사람 쪽으로 흐른다. 이런 호기심이 처음도 아닌데 왜 매번 처음처럼 어설픈지 모르겠다. 며칠 지나면 이 마음도 사라질까?(2024.01.25) PLAYLIST🎧 - 총 15곡, 54분 1. 이찬혁 | 당장 널 만나러 가지 ..